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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祖 이길권(李吉卷)

고려 문신. 용인에서 선비 원(援)의 아들로 신라말 헌강왕 6년(880)에 출생하였다. 본래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으며, 재능이 특출하고 학문을 즐겼는데 특히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에 도통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도승(道僧) 도선대사(道詵大師)가 그를 처음 보고 “이분은 왕을 도와 큰 일을 할 재량(才量)이 많은데 어찌 지방에 묻혔는가” 라고 하였는데 이때부터 서로 친하게 사귀며 학문을 닦았다.

 

때는 신라 말엽이라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여 국운이 쇠할 무렵으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누차 이길권을 초빙함으로 이에 응하여 함께 국란을 수습하게 되었다.

 

길권은 고려 건국에 공로가 컸기 때문에 고려 태조가 즉위(卽位)한 후 이르기를 “옛날 주(周)의 대업을 도운 여상(呂尙)이나, 한(漢)을 개국할 때 도운 장자방(張子房)의 공보다 용인의 이길권의 공이 더 컸다”고 하며 고려 건국의 공로로 식읍(食邑) 5백호를 내리고 산성군(山城君)으로 봉(封)하였다.

 

그러나 길권은 자신의 영달을 위한 벼슬을 생각지 않고 오직 겸양의 마음으로 하사(下賜)한 녹을 받지 않고, 말하기를 “신은 땔 나무를 하고 나물을 뜯으며 산골에서 청백(淸白)히 살지, 후한 녹은 마음의 짐이 되니 내 어찌 받으리요”하고 사양하였다.

 

고려 태조는 더욱 그의 덕품(德品)을 추앙(追仰)하여 구성백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숭록대부태사(駒城伯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崇祿大夫太師)로 삼고 능선각(能善閣)을 제(題)하여 공신으로서 최고위로 정하였다.

 

또 길권은 고려 태조의 누님인 장공주(張公主)를 맞이하여 고려조의 부마가 되었다. 그는 벼슬을 뜬 구름과 같이 생각하고 고향인 용인에 돌아와서 청렴하게 살다가 하세하였다.

 

나라에서는 생전의 공을 기려 안의공(安毅公)이라 시호(諡號)를 내렸다. 그후 후손들이 그를 용인이씨의 시조로 하고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