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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이홍간(李弘幹)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홍간은 성종 17년(1486) 아버지 사간 효독(孝篤)과 어머니 최명근(崔命根)의 딸 사이에 태어났다. 자는 대립(大立), 호는 쌍괴(雙槐)이다.

 

어려서부터 도덕적으로 정직하고 선비로서 고른 자질을 가진 이홍간은 중종 2년(1507) 생원시에 합격하고 중종 8년(1513) 식년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권지승문원정자에 처음 제수되었고 곧이어 예문관에 들어가 1517년 11월 평안도평사로 파견될 때까지 검열, 대교, 봉교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광조(趙光祖), 김정(金淨) 등과 교유하면서 김정 등의 편협하고 과격함을 경계하였다. 절개가 있고 성격이 굳은 그는 권세와 타협하지 못하여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에도 남곤(南袞)이 고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나무랐으며, 1520년 2월 사간원정언에 발탁되고 그 후 홍문관 교리, 세자시강원 사서, 호조, 예조, 병조의 좌랑, 정랑, 세자시강원필선, 수원, 곤양, 옥천군수를 역임하였다.

 

1527년 5월 사헌부 장령으로 11월 경연(經筵)에 참여하여 1513년 박영문(朴永文), 신윤무(辛允武)의 옥사에 연루되어 죄인으로 귀양을 간 영산군 전(寧山君 佺 : 성종의 13남)을 세종이 양녕대군을 방면한 고사에 비유하여 사면할 것을 청하여 방면하게 하였으나, 강직한 언론을 꺼려한 대신들의 배척으로 파직되었다. 곧 복직되어 사옹원(司饔院), 군기시(軍器寺), 종부시(宗簿寺)의 정(正)과 공주, 청주, 광주의 목사를 역임하였다.

 

1543년경 봉상시정(奉常寺正), 명종 원년(1545) 11월 인종의 빈전도감사(殯殿都監事)에 참여한 공로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되고, 다음해 12월 동지부사로서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 도중 사류하(沙流河)에서 풍윤질(豊潤疾)로 죽어 구성(駒城)에 상장(喪葬)하였다.

 

그는 효행과 강직한 언사로 명망이 있었으나 크게 이루지는 못하고 20여년간 외관으로 재직하면서 선치를 행하였다. 부인 고성이씨(固城李氏)와의 사이에 2남 4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