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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신사임당 母夫人 이씨

신사임당의 어머니인 용인이씨(율곡의 외할머니)는 생원 이사온(李思溫, 판관공파 20世)의 무남독녀로 외가인 강릉 북평에서 태어나 자랐다. 강릉지역과의 인연은 1505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이가 그의 둘째딸을 용인이씨 이사온에게 시집보내면서 사위에게 오죽헌(烏竹軒)을 물려 주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씨부인의 어머니(강릉 최씨)는 최응현의 11남매 중 둘째딸로 신사임당의 외조부가 되는 이사온과의 사이에 딸만 하나 두었는데 서울의 신명화(申命和)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 최씨부인의 병환으로 시모의 허락을 받고 강릉에 내려왔다가 그길로 이곳에 머무르게 되자 사임당도 오죽헌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줄곧 16년 동안 거주하면서 딸 다섯을 친정에서 낳아 길렀다.

 

사임당 또한 서울의 이원수(李元秀)에게 시집을 갔으나 친정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율곡선생도 이 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딸만 다섯을 둔 사임당의 어머니 이씨는 분재기 내용으로 보아 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줄 때 둘째 딸 사임당의 아들 현룡(見龍 - 율곡)에게는 봉사조(奉祀條)로 서울의 와가(瓦家) 등을, 넷째 딸의 아들 운홍(雲鴻 - 권처균(權處均))에게는 배묘조(拜墓條)로 오죽헌 등을 상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죽헌의 바깥채는 신사임당 외조 이사온과 율곡의 외조 신명화, 아버지 이원수 및 율곡의 이종 사촌 권처균이 거처했던 곳이다.

 

용인이문 이씨부인은 부모에게는 효녀로, 남편에게는 어진 아내로, 자녀에게는 훌륭한 어머니로서 일찍이 칭송을 받았다. 당시 신명화가 장모(이씨부인의 어머니 최씨부인)의 별세 소식에 강릉에 가는 길에 병을 얻게 되자 향불을 피워 놓고 간절히 기원하기를 7주야를 눈 한번 붙이지 않고 간청하면서 간병을 다하여 낫게 하였다. 이 소식이 조정에 알려져 1528년 효열(孝烈)을 기리를 정려각(旌閭閣)이 오죽헌에 세워지게 되었다 한다. 이처럼 이씨부인의 덕과 인격은 딸인 신사임당과 외손자 이이 율곡에게도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 여성계의 대표적 현모양처로 키웠고, 나아가 외손자 이이 율곡을 한나라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이씨부인은 남편 신명화가 세상을 떠난 지 47년을, 딸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후 18년간 외손자 율곡에게 많은 감화를 주면서 키웠던 것이다. 율곡 나이 18세에 지었다는 ‘이씨감천기(李氏感天記)’에 의하면 외할머니 이씨부인은 “말씨는 서툴러도 행동은 민활했고, 매사에 신중하고 옳은 일에는 과감했다”고 기술하고 있어 역시 지혜로운 여성으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용인이씨 분재기 - 154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