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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世 이치상(李致祥)

선조 22년(1589) ~ 인조 2년(1624) 조선 문신. 자는 사화(士和), 호는 어은(漁隱), 정민(貞敏)의 아들.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공주로 달려가 피난간 인조 임금을 호위하였다. 이때 그의 부친은 면계시(勉戒時)를 남기니 이르기를 “집안이 대대로 벼슬을 하고 충성으로 보답하였는데 이제 나라위해 영광되게 죽을 날은 왔고, 역적들은 서울에 쳐들어 왔도다. 임금은 욕되게 피난길에 올랐으니 왕통을 어찌 보존하리, 이 세상에는 원차산(元次山) 같은 이도 없으니 누가 꾀를 드릴고, 임금을 위하여 너를 보내니 밤낮으로 충성을 다하여라. 너의 명예에 욕됨이 없다면 다소 나의 뜻은 위로되리라”고 하였다. 묘는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