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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世 이사경(李士慶)

구성백 이길권의 24세 손으로 선조 3년(1569)에 출생(出生)하여 광해군 14년(1621)까지의 인물로 자는 이선(而善), 초자(初子), 선여(善餘), 호는 쌍곡(雙谷)이다.

 

선조 34년(1600) 식년시 문과에 장원급제 후 통정대부 사간원 지제교의 관위에 올랐으며 조실부모하여 외가에서 자랐다. 문과장원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성천부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으로 피난중에 있던 선조의 행궁에 불이 나 그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그후 광해군 10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이듬해 대사간의 관위에 올랐으나 경상·충청감사들이 올린 진찬에 이미 폐위된 인목대비의 존호를 묵인했다하여 대북파의 탄핵을 받자 자진 사퇴, 논쟁을 그치게 하고 이때부터 대각에 들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그후 승지와 병조, 예조판서를 지내고 특히 인목대비의 유폐를 보고 벼슬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천성이 중후청근(重厚淸勤)하여 많은 치적을 남겼다. 당대의 세도가였던 이이첨과는 척분간인데도 조금도 아부하거나 굴하는 일이 없이 오직 소신에 따라 시비를 분명히 하고 청렴강직을 신념으로 하여 난세의 완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雙谷公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