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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世 이경호(李景祜)

자는 효석(孝錫), 초명은 경조(景祚)이다. 1705(순종 31)년에 좌의정 보혁(普赫)의 아들로 태어나 정조 3년(1779)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 11년(1735)에 생원으로 뽑혀 충주목사에 오르고, 175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762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인양군(仁陽君)으로 습봉(襲封)되고, 경기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호조, 예조, 병조판서, 좌참찬(左參贊),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역임하고, 70세에 이르러 아들 재협(在協)의 영귀로 숭록대부(崇祿大夫)의 품계에 오르고 기사(耆社)에 들어갔으며,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영조가 그를 평하여 “화려함이 없고 사무에 능통하다”고 하니 그는 이것을 영광으로 여겨 거처하는 방에 [무화(無華)]라는 액자를 만들어 걸었다.

< 仁陽君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