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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世 독립운동가 이아주(李娥珠)여사

독립운동가이자 인촌 김성수 선생의 부인인 이아주 여사는 평북 강계지방 출신(1899년생)으로 이봉섭(李鳳涉, 소경공파 38세)의 1남 2녀중 장녀이다. 당시 정신여학교 4학년에 다니던 신여성이었다. 그녀가 21세 때 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시위에 분연히 참여하다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일제 관헌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조선 사람이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라고 항변하여 판사조차 말문을 잃게 하였다. 그러자 판사가 다시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관대히 처분하겠다고 하자, 다시 “금후라도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오면, 독립만세를 부르겠다”고 하니 변호인과 방청인 모두 감탄하였다 한다. 이러한 과정을 친구인 변호사 김우영에게 듣고서 호감을 받았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는 당시 불행히도 상배(1919.10)를 당한 후라, 정신여학교 교장인 독립운동가 김필례(金弼禮)선생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결혼 허락을 얻어 혼례(1921.1 YMCA)를 거행하였다. 이 때 인촌은 31세였고 이아주 여사는 23세였는데 그 후 여사는 보성전문학교 창립과 광복 후 제2대 부통령을 지내는 인촌 선생을 잘 보필하기로 유명하였다.

 

이아주여사는 정신여고 개교 80주년 기념식에서 ‘모교를 빛낸 동창들’ 중의 한 사람으로 표창을 받았다. 슬하에 당신의 혈육을 포함하여 13남매와 대소가족을 거느리고 집안을 지키며 1968년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나니 인촌의 동생 김연수는 그녀의 일편단심을 일러 “우리 형수는 烈女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