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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世 이광시(李光時)

고려 원종 9년(1268) ~ 충목왕 1년(1345). 시호는 간숙(簡肅).

일명 선시(善時)라고도 하였으며 송경(開城)에서 탄생하셨다. 성품이 굳세고 과단성이 있어 옳지 못한 일을 보면 참지 않으시는 까닭에 도리어 화를 입었다. 충렬왕에게 호복(胡服)을 입지마시라고 간(諫)하다가 귀양갔었고 경창궁주(慶昌宮主)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기를 주장하다 다시 귀양갔었다.

 

내시 이대순(李大順)이 원나라에 들어 가제왕의 총애를 받고 일찍이 위 득유의 딸을 맞아 살 때에 종의 일로 영평궁(永平宮)과 더불어 다툴 때에 원나라에 건의하였더니 영(令)을 내리기를 헌부(獻部)에서 처리하게 하였다. 공이 본부산랑(本部散郞)으로 전서(典書) 김사원(金士元)과 더불어 이 사건을 다루는데 위씨를 돕지 않게 되자 대순이가 노하여 팔찰 등으로 하여금 매를 쳐서 귀양보낸 일이 충선왕 2년 고려사에 실려 있다.

 

충숙왕 11년 총부전서(摠部典書)로서 원나라 진종(晉宗) 즉위식에 진하사(進賀使)로 다녀오셨다. 그 후 벼슬이 봉익대부 동지밀직사사 판도판서 상호군 판전의시사(奉翊大夫 同知密直司事 版圖判書 上護軍 判典儀寺事) 에 오르셨다.

 

부인은 연창군부인(延昌郡夫人) 죽산박씨(竹山朴氏)이며 두 아드님, 승명(承命), 중민(中敏)과 세 따님을 낳으셨다. 계부인은 덕양군부인(德陽郡夫人) 행주기씨(幸州奇氏)이며 세분의 아드님, 중인(中仁), 중신(中信), 중순(中順)을 낳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