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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世 이사위(李士渭)

고려말 조선초기의 문신.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중인의 둘째 아들이며 청백리(淸白吏)인 백지(伯持)의 아버지이다. 일찍이 진사(進士)에 올라 공민왕 9년(1360)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문익점 등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고 고려말에 판호조사(判戶曹事), 밀직부사(密直副使), 서해도관찰사(西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개국후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들에 대한 회유와 탄압이 날로 심해져 이에 견디다 못한 유신(遺臣)들은 자신들의 보신(保身)을 위하여 공을 대표로 내세워 벼슬길에 나가도록 종용하니 조선왕조에서는 벼슬을 하지 말라는 선친의 유언과는 상반된 유민(遺民)들의 간곡한 원류(願留)때문에 고민 끝에 개성유후(開城留後)를 맡으셨지만 선친의 뜻을 따르지 못함을 못내 한스럽게 여기면서 지냈다 한다. 묘는 용인시 모현면 매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