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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이백지(李伯持)

1361년 사위(士渭)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던 그는 고려 우왕 11년인 1385년 정도복(밀직제학 정도전의 弟) 등과 함께 같은 동진사(同進事) 23인 중 한사람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전서(刑曹典書), 좌우부대언(左右副代言)을 지냈다.

 

1409년(태종 9년) 성주목사로 재직하면서 백성을 동원하여 관둔전(官 屯田)을 경작하도록 하였다가 경차관(敬差官)에게 적발되어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 1419년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중 병으로 사임한 뒤 그 해 12월에 임종했다. 조정에서 종이 70권을 치부(致賻)하였으며 묘소가 지금의 포곡면 가실리 에버랜드내에 위치한다.

 

태종의 신임이 매우 커 어느 날 승정원 지신사(知申事) 조말생(趙末生)과 더불어 편전에 입대했을 때 이르시기를 “경에게 어찌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美衣珍食) 같은 것을 바라겠오, 몸소 겪어 본 사람만이 경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요”라고 하시면서 평소 공의 청백함을 친히 치하하는 하교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조선 태종때 청백리(淸白吏)로 녹선되었다.

 

5남을 두니 부사공 수강(守綱), 주부공 수령(守領), 판관공 수상(守常), 현감공 수례(守禮), 사직공 수의(守義)이다. 용인이문 13개 대파 중 8개 대파가 17世때 형성되었는데 그중 5파가 공의 아들대에서 형성되니 용인이문 최대의 후손을 형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