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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世 이후천(李後天)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신충(藎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계인(啓仁)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사경(士慶)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군수 희익(希益)의 딸이다.

 

음직(蔭職)으로 용강현령(龍岡縣令)으로 계실 때 지방세도들이 많아 관의 영(令)이 서지 않고 백성들이 여기에 붙어 도망가 숨는 자가 많았다. 공께서 이를 아시고 세도들의 압력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이를 조치하여 바로 잡았다. 광해군 10년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장령이 되시어 시관(試官) 김윤(金崙), 임건(林健) 등의 비행을 탄핵하여 파직케 하고 지평을 거쳐 인조 2년 명장 모문룡(毛文龍)이 병력 5,000을 이끌고 후금(後金)을 막는다는 구실로 함흥부를 침공(侵攻)하자 조정에서는 공을 접빈 유격장군으로 삼아 이들의 진격을 막게 했다. 대임(大任)을 맡은 공은 임기웅변의 계책을 써 남하(南下)를 저지하고 무사히 책임을 완수하여 유격장군으로 손꼽히게 되셨다. 인조 10년 내첨시정(內瞻寺正)으로 계실 때 춘향친제(春享親祭)에 불참한 허물로 그만 두셨다가 그 후 종묘서령 영흥부사를 지내시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70세된 고향친구 4인과 더불어 57계(契)를 만들어 여생을 즐기셨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