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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世 이진은(李震殷)

자는 정숙(正叔), 호는 호와(瓠窩). 홍망(弘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철(以哲)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의무(宜茂)이며, 어머니는 면천박씨(沔川朴氏) 성렬(成烈)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 영특하시어 현종 7년(1666) 생원시를 거쳐 숙종 4년 문과(文科)에 장원(壯元) 급제하였다. 전적, 지평, 지제교, 응교 등을 역임하고, 여러 주군의 수령을 지냈다.

 

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 장례원 판결사,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을 역임하였고 숙종 33년(1707) 문신정시(文臣庭試)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시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제수되셨으나 이 해 졸하시었다.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널리 알려져 알던 모르던 간에 “뛰어난 문인을 잃었다”고 모두 애도하고 탄식하였다한다. 시문(詩文) 각체에 밝고 능하시어 일가의 기축(機軸)이 되시어 두소릉(杜少陵)의 소리를 들었다. 문명이 일세(一世)에 알려진 제학 임상원(任相元)은 공을 외우(畏友)라 불러 존경했다.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도 어느 날 사람들에게 “당세의 문재(文材)는 이공(李公) 뿐”이라고 칭찬하였으며 전통을 깨고 십수년동안 대제학 자리를 비워놓기까지 하였다한다. 또한 제기(諸技)에도 능하여 특히 장기를 잘 두시어 원근에서 찾아와 승부를 겨루었으나 상대가 없었다고 한다.

 

외직으로는 대흥, 삭령, 고성, 김제, 곡산 등지를 역임하였고 부임하는 곳마다 선정을 베푸시었다. 평소 청렴, 간결하여 일에 소홀하지 않았으며 백성을 극진히 생각하셨다. 감사가 이 사실을 조리있게 밝히어 주달하였던바 임금께서 항상 공을 아끼시었다.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 전(銓)의 따님이시며 아드님 석윤(碩潤)을 낳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