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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世 이보혁(李普赫)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원(聲遠).

좌의정 세백(世百)의 재종손(再從孫)이며 영의정 이의현의 당질(5촌 조카)이다. 음보로 기용되어 영조 9년 호조, 병조참판에 오르셨고 동 14년 공홍도관찰사(公洪道觀察使) 재직 중 남형(濫刑)의 책임으로 그만두셨다가 그 후 풍덕부사(豊德府使), 한성부좌윤이 되셨다.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에 성주목사(星州牧使)로서 정희량(鄭希亮)을 토평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三等)과 인평군(仁平君)에 봉군되시니 후에 인평부원군(仁平府院君)의 작호를 받으셨는데 용인이씨 중 조선조에서 1품직의 공신에게 내려지는 부원군(府院君)의 칭호를 받은 유일한 분이기도 하다.

 

강원도관찰사 재임시 선정을 베풀어 유명하셨고 임자보(壬子譜 : 1732년) 출간 비용을 출연하였다.

동 24년 부총관, 동 29년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셨다.

 

시호는 충정(忠貞)이고 아드님 경호(景祜), 중호(重祜)부터 시작하여 후손 6명이 대과에 급제하고 손자 재협(在協)은 영의정을 지내 더할 수 없는 명문가를 이루었다.

 

2001년 이장 때 출토된 지석 중 영조 임금의 어제(御製)가 발견되어 공에 대한 영조대왕의 지극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