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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이백찬(李伯撰)

고려 공민왕 8년(1359) ~ 조선 태종 15(1415) 고려 문신. 이태조 개국(여말 혁명)에 즈음하여 남원 적소(謫所)에서 하세(下世)한 사영(士潁)의 아들,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중인(中仁)의 손(孫). 고려조에서 중직대부(中直大夫) 영천군사(永川郡事)에 이르렀고 어사(御史), 현령(縣令)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항상 덕으로써 선정(善政)을 베풀어 그의 명성은 대내에 자자하였는데 김제현령(金堤縣令)으로 있을 때 권근(權近)이 송공시(送公時)를 지어 덕행을 칭송하였다. 그 역시 조부 중인(中仁)의 경계를 명심하고 이조불사(李朝不仕)로 절의(節義)를 지켰다.

 

그후 이조(李朝)에서 중인(中仁), 사영(士潁), 백찬(伯撰) 3대에 걸친 충절(忠節)을 기려 조(祖)의 중인에게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을 증직하였다. 묘는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다.

 

        < 권근(權近) 송공시(送公時) >

 

         세상이 애민하는 마음 간절하여

         사려 깊고 사리 밝은 선비를 택한 끝에

         그대가 바야흐로 고을(군)을 얻었네.

         그대의 부친도 고을을 지내는 터인데

         덕으로 선정을 베푸니 새벽이 밝기만 하네.

         어사때의 명성이 아직도 남았는데

         한결같은 그대의 노고에는 내외없이 변함없고

         정사가 으뜸이니 다시 명성 떨치네.

         (睿想憂民切 疇咨擇士精 惟君方得郡 乃父亦專城

          帶犢明新令 乘聰有舊聲 均勞無內外 政最更飄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