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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世 이보천(李普天)

자는 사호(士浩). 교악(喬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준(世準)이고, 아버지는 의로(宜老)이며, 어머니는 백천조씨(白川趙氏) 화벽(和璧)의 딸이다.

 

영조 47년(1771)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보온(李普溫)·홍상성(洪相聖)·이규위(李奎緯)·안성빈(安聖彬)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 :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권점(圈點)되었다.

 

영조 51년(1775)에 정조가 세손으로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게 되었을 때, 예를 행하던 날 숙배(肅拜)에 참여하지 못하여 향리로 방축(放逐)되었다. 이 때 지평 홍낙항(洪樂恒)이 이를 김상익(金相翊)·송형중(宋瑩中)·박종집(朴宗集) 등과 연관시켜, 김상익의 지시에 의하여 고의로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공은 단양(丹陽)에 휴가를 받아 내려갔다가 급히 상경하였다고 상소하였다.

 

또한 순조 1년(1801)에는 전라감사 윤행임(尹行恁)이 문형(文衡 : 문사에 관한 관직으로 대제학을 이름)과 전병(銓柄 : 전랑의 선발권이나 추천권)을 오로지 차지하고 있을 때 공의(公議)를 저버리고 사사로움을 좇아 가까운 친·인척을 천거하였다고 탄핵되었는데, 공 또한 여기에 관계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관직은 검열, 좌부승지, 대사간, 형조판서, 한성판윤, 의정부좌참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부인은 풍양조씨(豊壤趙氏) 정세(靖世)의 따님이시며 아드님 석호(錫祜)를 낳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