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발상지비

용인이씨는 휘 길권(諱 吉卷)을 시조로 하여 그 후손들이 고려조와 조선조를 거치면서 천여년간 한반도에 널리 분포되어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등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조께서는 신라 헌강왕 6년 서기 880년에 용인에서 탄생하시어 천성이 강직하고 도량이 활달하시며 학문을 즐겨 천문지리에도 능통하셨다.

 

시조께서는 용인의 토호로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워 그 공로로 식읍(食邑) 500호와 산성군(山城君)에 봉군했으나 원래 청렴 겸양하신 공께서는 이를 정중히 사양하시니 왕건은 그 덕을 더욱 높여 구성백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駒城伯 三韓壁上功臣 三重大匡 太師)의 벼슬을 내리고 안의공(安毅公)의 시호를 주어 그가 살던 용인을 본관으로 삼게 하였다.

 

묘(墓)는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산 8번지 자은교촌 마을 뒷산이었으나 실전(失傳)되어 용인이씨 시조 발상지비(發祥址碑)만 세워져있으며 대전 뿌리공원내에는 봉황이 창공을 향하여 힘차게 비상(飛翔)하는 형상의 용인이씨 유래비(由來碑)가 건립되어 있다.

 

용인이씨 유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