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우사집(雩沙集)

▷ 간  종 : 목판본

▷ 간행년 : 1712年刊(1741年頃 追刻本)

▷ 권  책 : 原集 10권, 附錄 5권 합 4책

▷ 행  자 : 10행 20자

▷ 규  격 : 原集 : 18.6×14.4(㎝), 尺牘ㆍ附錄 : 18.5×14.2(㎝)

▷ 어  미 : 原集 : 上黑魚尾, 尺牘ㆍ附錄 : 上二葉花紋魚尾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 저  자 : 이세백(李世白)

               - 1635년(인조 13) ~ 1703년(숙종 29)

               - 자 仲庚, 호 雩沙, 北溪, 시호 忠正

▷ 편찬 및 간행

저자의 시문은 아들 李宜顯이 수습, 정리하여 저자 사후 10년 만이라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간행되었다. 詩文의 刪定과 編次는 金昌翕이 맡았는데, 저자가 金光燦의 外孫이었으므로 金昌翕과는 외사촌이 되는 관계였다. 김창흡이 1712년(숙종 38) 2월에 쓴 서문을 보면, 저자의 宰相으로서의 업적과 文章의 뛰어난 점을 언급한 다음에 “公의 아들 嶺南伯 李宜顯이 遺稿를 맡기면서 그 간행하는 일의 가부를 간절히 묻기에 내가 받아서 刪定하고서 반드시 간행하라는 뜻으로 권말에 써서 돌려주었다.”라고 하여, 자신이 편차를 맡았고 李宜顯이 간행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 본집의 年譜에도 임진년(1712)에 아들 李宜顯이 김창흡과 상의하여 10編으로 산정한 뒤 문집을 간행하고 冊板을 本家에 간직해 두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李宜顯은 自撰 年譜인 紀年錄(陶谷集 권32)에 의하면 1711년 7월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1712년 3월에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따라서 본집은 金昌翕의 刪定을 거친 뒤 아들 李宜顯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이던 1712년에 大丘에서 10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된 것이다.《초간본》 이 본은 현재 규장각(奎6773) 등에 소장되어 있다.

 

초간본의 간행 이후 李宜顯은 1725년 저자의 行狀을 짓고, 李縡에게 諡狀을 부탁하여 1726년 저자의 延諡禮를 행하였다. 또 年譜를 撰하고, 묘지명과 신도비명 등 부록문자를 정리한 뒤 1741년경 原集의 일부를 改刻함과 동시에 附錄 5권을 추각하였다.《추각본》 附錄의 추각이 행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年譜에서 1741년 2월 신도비를 세우는 것이 가장 마지막 기사로 실려 있으므로 적어도 1741년 이후부터 李宜顯이 졸하기 전인 1745년 이전에 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附錄이 추각된 본은 현재 규장각(古3424-2)에 소장되어 있다.

 

본래 초간본의 원집 권10에는 祭文에 祝文 4수가 부기되어 있었으나 부록의 追刻 때 축문을 삭제하고 편지 39편을 새로 추각해 넣었다. 그러나 권10의 目錄에는 축문의 제목이 그대로 남아 있고 卷首題 옆에도 “附祝文四首”라는 註가 있어 권10의 제17판부터만 새로 개각하고 이 외에는 초간 판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삭제된 글은 모두 應製文으로 新寧鄕校改題祝文과 奉安文, 萬頃鄕校의 移安祭祝文과 還安祭祝文인데, 한 판도 안되는 적은 분량이다. 편지가 후에 추각된 것은 수습과 정리에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겠지만 원집이 黨爭이 치열하던 숙종 말기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제외시켰다가 부록의 간행시 추각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본서의 저본은 원집은 1712년 간행된 초간본으로 규장각장본(奎 6773)이고, 부록과 편지는 1741년경 추각된 본으로 역시 규장각장본(古3424-2)이다. 다만 원집 권10의 제17판부터는 추각된 편지가 실려 있는 추각본에서 보완 대체하였다.

 

▷ 구성과 내용

본집은 原集 10권과 附錄 5권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두에 1712년에 쓴 金昌翕의 序文이 있고, 각 문체별로 수록된 작품 수를 적은 總目이 있으며 작품 제목을 실은 目錄은 권마다 따로 실려 있다. 권1~3은 詩이고, 권4~8은 疏箚 등 公車文이며, 권9~10은 應製文과 文이다.

 

권1~3에는 561수의 詩가 詩體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실려 있다. 권1에는 1653년 〈喜雨〉부터 1688년의 莊烈王后 挽詞까지 181수가 있는데, 주로 외숙인 文谷 金壽恒, 谷雲 金壽增과 차운한 시가 많으며 특히 1677년 金壽增의 은거지인 谷雲을 방문하여 지은 시와 黃海 監司 시절에 지은 시가 많다. 그 외에 南宮垣, 李敏敍, 朴泰維 등 과의 수창시도 실려 있다. 1688년에 지은 〈送金士肯出按海西〉는 36수에 달하는 연작시인데 黃海道의 산천과 유적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으며, 각 지역에 대한 小註가 달려 있다. 권2는 1690년~1694년 간의 작품으로, 己巳換局으로 西人이 실각하고 저자도 파직되어 高陽에 은둔하고 있던 시기에 지은 118수이다. 1690년작 〈述懷〉는 앞부분에서는 가문의 世德을 읊고 뒤에서는 평생의 이력을 적은 自傳的인 연작시로 본래 30수였으나 여기서는 29수만 뽑혀 있다. 여타 시와 달리 상세한 설명을 담은 註가 많이 달려 있어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외에 아들 李宜顯과의 차운시가 대부분이고 간간이 杜甫시에 대한 차운시와 挽詩가 섞여 있다. 만시 중 〈悼夭〉는 1650자에 달하는 오언장 편시인데 저자가 58세 때에 죽은 네살박이 孫女를 애도하는 내용이다. 권3은 1695년에서 졸년인 1703년까지 지은 252수이다. 이 시기는 다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시기인데, 1695년 冬至使로 차출되어 燕京에 다녀오는 동안 副使, 書狀官과 수창하며 지은 시가 100여 수 가량 실려 있다. 그 외에는 金壽增과의 차운시, 挽詩 등이다.

 

권4~7은 疏箚 87편으로 역시 연도순으로 실려 있다. 1681년의 〈修撰謝恩後陳情辭職疏〉부터 졸하던 해인 1703년의 〈敦諭後辭免兼陳所懷箚〉까지이고, 대체로 1695년 이후의 소차가 많은데 특히 1698년과 1699년이 각기 권5와 권6 한 권씩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내용은 대부분 辭職을 청하는 소차이거나 待罪疏, 自劾疏 등이며, 상의 批答이나 備忘記의 내용이 小註로 부기되어 있다.

 

권8은 啓辭 5편, 書啓 5편, 獻議 20편이다. 啓辭는 간원이나 승지로 재직하던 중에 올린 것이고 書啓는 왕이 史官이나 承旨를 보내 하유한 비답에 대해 올린 것이다. 獻議는 魯山君과 廢妃愼氏의 復位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실려 있으며, 그 밖에 科擧를 둘러싼 논란으로 罷榜, 復科 등이 있고, 살인 죄인에 대한 논의, 金長生의 文廟從祀, 緣坐制의 해석상의 문제 등이 논의되어 있다.

 

권9는 行狀 2편, 墓表 1편, 記 1편, 跋 2편과 表箋 5편, 敎書 3편이다. 行狀과 墓表는 모두 부친 李挺岳과 모친 安東金氏에 대한 글이다. 기는 저자가 洪川 縣監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지은 兩忘軒에 대한 기문이고, 〈禮記精華跋〉은 鄭弘溟 등이 抄選한 「禮記精華」 등사본에 저자가 보충 註를 달고 淸陰의 「讀禮隨鈔」 4권을 합쳐서 자손의 학습용으로 남겨 주겠다는 뜻으로 1679년에 지은 것이며, 〈題選賦後〉도 역시 자손의 학문을 위해 뽑아놓은 選賦에 대한 발문으로 1691년작이다. 表箋은 모두 課作이거나 지방관으로 나가 있을 때 지어 올린 것이다.

 

권10은 祭文 11편과 편지 39편이다. 권두의 目錄에는 祝文 4편도 附記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집의 후반부는 追刻本을 저본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내용은 없다. 祭文은 사위 權尙明을 비롯하여 외숙인 文谷 金壽恒, 谷雲 金壽增, 조카 李宜振, 權益謙, 일찍 죽은 딸과 며느리 등 친인척에 대한 글이다.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은 21명인데 주요 수신자별로 편차되어 있다. 즉 尤庵과 權尙夏에게 보낸 편지가 제일 앞에 있고, 다음으로 李濡, 金昌集, 金昌協, 金昌翕 등 外家, 그 밖에 宋相琦, 李思永, 黃欽, 李畬, 申琓, 金構, 李健命에게 보낸 것이 있고, 마지막으로 아들과 사위, 외손에게 보낸 것이 있다.

 

附錄은 모두 5권이나 각 권마다 20판 내외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권1은 世系圖와 年譜로 아들 李宜顯이 작성하여 저자의 손자인 李普文까지만 실려 있다. 연보도 비교적 간략한 내용으로 官歷을 위주로 작성되었으며 神道碑를 세운 1741년까지의 기사가 실려 있다. 권2는 李縡가 1726년경 지은 諡狀으로, 李宜顯이 지은 行狀을 기반으로 작성한 것인데 저자의 행장은 「陶谷集」 卷23에 수록되어 있다. 권3에는 李縡가 지은 神道碑銘, 閔鎭遠이 쓴 墓誌銘, 이의현이 쓴 墓表陰記가 실려 있고, 권4에는 肅宗의 諭祭文과 세자의 致祭文, 기타 知人들의 祭文(8), 挽詞(62)가 있다. 권5에는 저자가 생전에 받은 敎書(3)와 不允批答(12)이 연도별로 실려 있고, 저자의 별장인 北溪精舍에 대해 金昌協(1693)과 權尙夏(1703)가 지은 記文이 있다.

      (필자 : 金成愛,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www.itk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