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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제승방략(增補制勝方略)

▷ 성격 : 병서(兵書)

▷ 편저자 : 김종서(金宗瑞), 이일(李鎰)

▷ 제작시기 : 1670년(현종 11)(중간)

▷ 권수·책수 : 2권 1책

▷ 간행·발행·발급자(처) : 이선

▷ 소장처 : 규장각 도서

 

조선시대 야인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함경도 8진(鎭)과 이에 소속된 각 보(堡)의 방수(防戍)를 논한 병서(兵書).

 

2권 1책. 목판본. 조선 초기 김종서(金宗瑞)가 저술한 것을 1588년(선조 21) 함경북도병마절도사 이일(李鎰)이 다시 시의(時宜)에 맞게 정리, 증수한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제승방략』은 1670년(현종 11)에 함경북도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 이선(李選)이 중간한 것이다.

 

최초 저술자가 김종서로 알려진 것은 이선의 발문(跋文)에서 비롯되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김종서가 아니라 이일(李鎰)이 처음 저술했다는 견해도 있다.

 

▷ 내용

함경도의 8진인 경흥진(慶興鎭), 경원진(慶源鎭), 종성진(鐘城鎭), 온성진(穩城鎭), 회령진(會寧鎭), 부령진(富寧鎭), 길주진(吉州鎭), 경성진(鏡城鎭)의 산천, 부락, 보루의 위치와 공수(攻守)의 요해(要害)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다음에는 8진의 경비대가 지켜야 할 군무 29조, 금령(禁令) 27조를 적어 놓고, 온성, 종성, 회령, 경원, 길주, 부령 등 6진에 있는 군관들의 관명을 써 놓았다.

 

권1의 머리에서 권2의 중반에 걸쳐 열진방어(列鎭防禦)가 실려 있다. 경흥의 서수라보(西水羅堡)부터 시작하여 부령, 종성, 명천, 길주 소속의 진보에 이르는 합계 44진보에 대해 차례로 설명을 하고  각 진보의 형세, 위치, 성곽, 산수, 봉수 및 적로(賊路)와의 거리와 추격, 요격의 요지 등과 고사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특히 경흥, 경원 등에는 창상곡(倉上穀) 및 군량곡의 남아 있는 양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다음 제2권의 후반부에는 군무(軍務) 29조, 금령(禁令) 27조, 육진대분군(六鎭大分軍), 삼읍분군(三邑分軍), 청행제승방략장(請行制勝方略狀), 비국회관(備局回關), 방량식(放量式)이 수록되어 있는데, 군무29조는 각 진, 보의 군사들이 지켜야할 수칙, 적병의 침구(侵寇)소식을 들으면 각 진, 보의 군사는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소식을 보고할 것인가와 군비(軍備), 천기(天氣) 등에 대한 내용이다. 금령 27조는 엄격한 법령으로 침구시(侵寇時)에 기간 내에 달려가 구원하지 않으면 군법으로 다스리며 각기 그의 소속장(所屬將)을 잃었을 때에는 그 아래 장수를 참(斬)하며 이름을 불러도 응하지 않는다거나, 기한 내에 이르지 않는다거나 군호(軍號)가 불명하거나, 함부로 떠들고 웃고 상관을 무시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거나, 요망한 말을 하여 군심(軍心)을 어지럽히거나, 남의 재물, 남의 수급(首級)을 도둑질 하거나, 꾀병하여 전선에 달려가지 않거나, 부상하여 죽은 체 하였다가 도망하는 자 등은 모두 참하며, 호물(胡物)을 탐하거나, 군중(軍中)에서 큰소리로 부르는 자 등은 벌한다는 벌칙 조항 등이다.

 

다음으로 육진대분군은 6진의 관직과 부서 등의 명칭을 수록한 것이고, 방량식은 군사와 군마에 대하여 군량 지급량을 명시하였는데, 예를 들면 인마(人馬) 1만의 하루 소요량이 쌀 533석 5두와 콩 333석 5두라고 되어 있다.

 

끝으로 이일의 「청행제승방략장(請行制勝方略狀)」과 이에 대한 조정의 회답인 「비국회관(備局回關)」, 그리고 「보순영(報巡營)」 「방량식(放糧式)」과 이선의 발(跋)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의 국경방어태세 및 군사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선조 때의 야인에 대처한 조선시대의 비변책(備邊策)은 물론 두만강 주변의 야인부락 사정도 잘 살필 수 있으며, 연산군 이래의 주요 고사도 알 수 있어 여진관계사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규장각에 원본 2부가 보관되어 있고, 1936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제12호로 영인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www.naver.com)